화담(和談) 구본무 회장, LG를 세계 속에 우뚝 세우다

화담 구본무 회장

1995년 제3대 LG그룹 회장에 취임한 故 구본무 회장(1945~2018)은 조부 구인회 창업회장과 부친 구자경 회장이 다져놓은 사업기반 위에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의 3개 사업 축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경영 혁신과 신규 사업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2017년 말 기준 매출 160조원, 임직원수 21만여 명의 명실상부한 글로벌 LG의 틀을 마련하였다. 과감하고 집요한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은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하는 LG의 저력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

화담 구본무 회장

“공정하고 강한경쟁을 통해 배출된 전문경영인들이 전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율경영체제를 더욱 굳건히 정착시키고, 최고의 인재들이 가장 자유롭게 능력과 창의를 펼칠 수 있도록 하여, 세계에서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초우량기업을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
- 1995년 회장 취임사에서 -

1995년 2월 22일, 구본무 회장은 창업 48주년을 맞은 LG의 제3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구자경 회장이 용퇴한 데 따른 국내 대기업 최초의 무고(無故) 승계였다. 당시 구씨와 허씨 가문의 원로 경영진들도 동반 은퇴함으로써 신임 회장을 비롯한 젊은 경영진이 소신 있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본무 회장의 취임일성은 ‘21세기 초우량 LG’를 실현할 것에 대한 다짐이었다.

전임 구자경 회장의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에서 시작된 변혁 1기에 이어 구본무 회장이 주도하는 제2의 경영혁신이 강도 높게 추진되었다. 1997년 3월 창립 50주년에는 ‘선택과 집중’의 혁신전략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향후 그룹의 성장을 주도해 나갈 미래형 승부 사업을 중심으로 일대 혁신이 시작되었다.

화담 구본무 회장

끈기와 결단의 리더십

구본무 회장은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에서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손이자 구자경 회장과 하정임 여사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 교사였던 부친으로부터 엄격한 규율과 예의범절, 가족간의 화합과 형제간의 우애 등을 배우며 자랐다. 연세대 재학시절 육군 현역으로 입대하여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후 미국으로 유학, 미국 애슐랜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럭키(현 LG화학) 심사과에 과장으로 입사하여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영업, 심사, 수출, 기획 등의 업무를 거치며 20여 년간 차곡차곡 실무경험을 쌓았다. 오너 일가라 하더라도 혹독한 경영수련을 통해 철저하게 능력을 검증받는 기간을 거쳐야만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는 LG家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제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 1995년 회장 취임사에서 -

소탈한 성격을 지닌 구본무 회장은 사업에서만큼은 ‘집념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었다. 뚝심과 끈기는 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차전지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20년 넘게 끈기 있게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한 데서 잘 드러난다. 오래도록 성과가 나지 않았고, 2005년에도 2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한 이차전지에 대해 주위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구본무 회장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미래가 있다며 끈질기게 주변을 설득했다. 포기하지 말자며 직원들을 격려하였고 투자를 이어간 구본무 회장의 뚝심은 결국 LG화학을 전기차배터리 사업에서 글로벌 1위의 선도 기업으로 이끌어내었다.

2003년 3월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체제 전환이나 2005년 허씨 일가와의 계열 분리에서 구본무 회장은 남다른 결단력을 발휘하였다. 당시만 해도 전례가 없던 지주회사체제 전환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모험이었다. 하지만 경영투명성과 사업경쟁력, 주주 및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올바른 길이라는 판단이 서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하여 성공시켰다. 이를 통해 LG는 그룹 총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시대적 체계를 청산하고 각 계열사 최고경영진들이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책임경영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57년간 3대에 걸쳐 유지되어온 구씨·허씨의 성공적 동업이 더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도 원칙을 지키되 배려와 양보를 결단한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사업에 임할 때와는 달리 사람을 만날 때는 항상 진솔하게 열린 소통을 추구했다. 누구를 만나든 먼저 악수를 청하였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가벼운 얘기를 먼저 꺼내곤 했다. 언제나 ‘나는’이라 하지 않고 ‘저는’이라며 자신을 낮췄으며 사석이라도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상대방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약속시간보다 항상 20분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었고 이를 어기는 법이 없었다.

화담 구본무 회장

LG Way를 선포하다

LG는 2005년 LG 출범 10주년을 맞아 ‘LG Way’를 선포했다. LG Way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이라는 기본 경영이념 위에 구본무 회장이 취임 이래 줄곧 강조해온 ‘일등LG’와 ‘정도경영’이 결합된 LG만의 고유한 경영철학이다.

LG Way의 바탕이 된 경영이념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은 구자경 회장이 구인회 창업회장의 창업정신이자 럭키금성그룹의 정신적 모토였던 ‘인화단결, 연구개발, 개척정신’을 시대 변화에 맞게 재정립한 것이다. LG인의 모든 행동은 항상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느냐’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자신의 업무에서 자기주도성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일할 때 진정한 의미의 고객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본무 회장이 LG Way를 선포하면서 새롭게 강조한 ‘일등LG’는 자신의 사업 분야에서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의지이다. LG의 임직원들이 각자의 사업영역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리더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업무에 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일등LG란 말은 사업 분야에서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다시 말해 고객가치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다는 뜻입니다.”
- 2009년 임원세미나 -

이와 함께 강조된 ‘정도경영’은 정정당당한 경쟁과 원칙에 기반한 투명경영을 통해 달성된 일등LG라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실천지침적인 요소다. 구본무 회장의 강한 의지와 신념을 보인 정도경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LG의 임직원들이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는 행동방식의 기본과 원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일등’은 결코 단기성과에 만족하는 근시안적인 일등이 아닙니다.
50년, 100년 동안 지속하는 일등이 되어야 하며,
이는 ‘정도경영(正道經營)’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입니다.”
- 2003년 임원세미나 -

화담 구본무 회장

21세기 선진 기업경영의 길 개척

구본무 회장은 재임기간을 통틀어 제조업의 본질인 기술력 확보에 매진한 현장 중심의 경영자다. “시장을 선도할 핵심 원천기술을 개발하라”는 메시지를 재임기간 내내 일관되게 전파하였으며, 신제품은 직접 써보고 만져보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등 연구개발과 제품화 역량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취임 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연구개발성과 보고회’와 ‘연구개발상 시상식’에 참석하여 기술개발을 독려하였다. 구본무 회장의 이런 신념은 LG가 R&D 투자에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온 원동력이 되었다.

“R&D는 LG가 일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날로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진기업의 파상 공세와 후발 기업의 맹렬한 추격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R&D에 있습니다.”
- 연구개발성과보고회 2008.03.12 -

R&D를 중요하게 여긴 만큼 구본무 회장은 우수한 R&D 인재를 확보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국적이나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사업에 필요한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실행하였다. 국내외 우수인재 영입을 위해 2012년 처음 시작된 LG 테크노 콘퍼런스에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직접 전면에 나섰다. 2013년 5월 당시에는 방미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하느라 이전에 LG 테크노 콘퍼런스에서 만난 대학원생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진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틀에 걸쳐 빡빡한 일정을 모두 마친 구본무 회장은 피곤한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지 숙소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바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면 학생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여건이 어려워질수록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 되는 우수인재 확보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더욱 과감히 집중하여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 임원세미나 1996. 9월 -

2018년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문을 연 융복합 연구단지 ‘LG사이언스파크’는 R&D를 통해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영속하는 LG의 토대를 이루겠다는 구본무 회장의 신념이 실체적으로 구현된 현장이다. 4조원을 투자하여 4년 여 만에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 평방미터 부지에 연구시설 20개 동으로 이루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가 완성된 것이다. LG사이언스파크는 R&D인재 2만3천여 명이 해외 유수 기업 및 벤처, 스타트업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시장선도 제품과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첨단 R&D의 메카이다. 특히 전자, 화학, 통신 등 LG가 수행하는 여러 사업영역 간 융복합 연구에 최적화된 연결과 소통의 공간으로 지어져 LG R&D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힐 것이다.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상품 창출을 위해서는 R&D가 필수적이고, R&D 인재들이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마곡에 대규모 융복합 R&D 단지를 만들고 있고
그곳에 최상의 시설 그리고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 LG 테크노 콘퍼런스 2015.02.23. -

화담 구본무 회장

좋은 인재가 맘껏 능력을 발휘하게 하다

구본무 회장은 우수 인재와 만나는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여러분이 LG에 오신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길 것”이라고 간곡하게 진심을 전한다. 구본무 회장의 이러한 인재관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졸사원 공채를 실시하면서 천하의 인재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구인회 창업회장의 젊은 인재 사랑 DNA가 고스란히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것처럼
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합니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회장이라도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 2011년 인재개발대회 -

화담 구본무 회장

구본무 회장은 취임 해인 1995년부터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글로벌챌린저’를 실시토록 하였다. 대학생들의 창의적 발상과 탐구에 대한 열정을 응원하고 세계를 향한 도전의식을 격려하였다. 2004년부터는 탐방 결과가 뛰어난 팀의 멤버들에게 LG 입사자격을 부여하여 인재 발굴의 통로로도 활용하고 있다.

LG의 인재중시 철학은 ‘성과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성과에 상응하는 차별적인 보상이 능동적 조직 분위기를 만들고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이는 탁월한 능력과 업적을 보여준 우수 R&D 인재에겐 파격적인 처우를 제공하도록 한 데서도 나타난다. 성과주의가 실제적인 제도로 운영되도록 우수 인재를 발탁하여 승진시키고 R&D 인재가 연구에만 전문할 수 있도록 임원급 이상 대우를 보장하는 ‘연구·전문위원’ 제도도 만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암운이 짙게 드리워지며 제 2의 IMF가 올 것이라 예측하던 시기, 구본무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과의 회의에서 “당장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된다”며 인재를 길게 보고 쓸 것을 주문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미래지향적인 인재관과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화담 구본무 회장

미래를 대비한 사업구조 혁신

구본무 회장은 LG가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사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9년부터 다양한 영역에서 영위하던 사업들에 대해 업종을 단순화·전문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계열분리를 통해 금융, 전선, 정유, 건설, 유통 등의 사업 분야를 정리하고,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이다.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3년, 5년 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미래에 투자해야 합니다.”
- 2012년 신년사-

이후 20여 년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의 3각 편대를 앞세워 글로벌 LG를 위한 구본무 회장의 노력은 쉼 없이 지속되었다. 어떤 시장과 경쟁 상황에서도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업구조 고도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한발 앞서 미래 성장의 씨앗을 육성하는 것은 물론 보다 효율적인 사업 수행을 위한 프로세스와 시스템 구축에도 힘을 기울였다.

“세상의 빠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합시다. 자동차 부품과 신에너지 분야처럼 성장의 가능성을 봤다면 자원을 집중해 과감히 치고 나가, 남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의 사업 구조가 어떤 시장과 경쟁 상황에서도 지속 가능할 수 있습니다.”
- 2016년 신년사-

사업구조 고도화와 성장사업의 선택에 있어 ‘고객 가치’와 ‘기술’이라는 LG의 DNA는 변함없는 기준이 되었다. 구본무 회장은 자동차부품, 에너지,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인공지능/5G, 그린·레드바이오 등 5개 사업을 LG의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사업으로 정하고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길을 개척한다는 각오로 우리의 사업 구조와 사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사업 구조와 시스템을 제대로 혁신하여
LG가 어떤 환경 변화에도 100년을 넘어 영속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듭시다.”
- 2017년 신년사-

2000년대 후반부터 구본무 회장은 직접 자동차부품 분야를 미래 성장사업으로 선정하고 계열사별 강점을 바탕으로 전문 분야를 육성하도록 했다. LG화학의 전기차배터리 세계 1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LG전자가 전기차부품 및 인포테인먼트 부품, LG디스플레이가 차량용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이 차량용 모터와 센서, 카메라 모듈, LG하우시스가 경량화 부품과 자동차 원단 등을 맡는 등 차세대 자동차 산업을 위한 각종 부품과 솔루션 개발에 관련된 계열사가 서로 협력하며 활발히 나서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친환경 에너지의 생산(태양광)부터 저장(ESS, 에너지저장장치), 효율적 사용 및 관리(EMS, 에너지관리시스템)에 이르는 ‘토털 에너지 솔루션’을 확보하고, 에너지 신산업 시장의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대형 LCD 디스플레이로 세계 1위를 차지한 2009년부터 구본무 회장은 미래 디스플레이 시장 선점을 위해 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 개발을 독려해왔다. 그 결과 2013년 LG디스플레이가 세계 최초로 55인치 대형 OLED 패널 양산에 성공하였고 뒤이어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55인치 OLED TV를 출시하는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하였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자 구본무 회장은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에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LG전자의 ‘인공지능 가전’, LG유플러스의 IoT 종합 솔루션 사업 및 5G 핵심 서비스 사업, LG CNS의 빅데이터 분석 및 스마트팩토리 사업 등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바이오 사업에서도 2016년 LG화학과 LG생명과학간 합병 및 그린바이오 국내 1위 기업 팜한농 인수를 통해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다.

화담 구본무 회장

사회와 더불어 영속하는 LG를 꿈꾸다

구본무 회장은 LG가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회를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책무를 다하는 일에 늘 적극적이었다. 특히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義人)에게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지론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 의식은 일제치하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구인회 창업회장의 민족의식과도 그 뿌리가 맞닿아 있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 하나하나가 더 나은 고객의 삶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 2017년 신년사-

2015년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겠다는 ‘LG 의인상’을 제정한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일환이었다. 사실 구본무 회장은 훨씬 이전부터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한 사람들과 투철한 책임감이나 시민의식을 보여주어 사회의 귀감이 된 사람들을 찾아 위로하고 지원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보다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울림의 폭을 조금 더 넓히기 위해 공식화한 것이다.

2017년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은 병사의 아버지가 자식을 잃은 비통함 속에서도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구본무 회장은 “자식을 잃은 큰 슬픔 속에서도 가해자가 받게 될 심적 타격과 그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린 사려 깊음에 감동받았다”며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사재를 전달하여 위로하기도 하였다.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군 장병들이나 세월호 사고 현장의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다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소방관 유족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위로했다.

후대에게 의미 있는 자연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던 구본무 회장은 LG상록재단을 통해 경기도 곤지암 일대에 생태수목원 ‘화담(和談)숲’을 조성하였다. 대중들에게 자연 속 힐링공간을 제공하고 자연환경 보존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겠다는 의지였다. 바쁜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연 생태계를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은 화담숲은 구본무 회장의 뜻에 따라 반딧불이, 원앙, 남생이 등 사라져가는 토종 동식물의 복원을 위한 연구의 장으로도 활용됨으로써 자연 생태계와 수목의 체계적인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황새복원 사업 등 조류 보호 사업에도 적극적이었고, 2000년 LG상록재단을 통해 한반도에서 관찰된 조류 450여 종을 망라한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발간했다.

화담 구본무 회장

큰 울림을 남기고 떠난 진정한 어른

LG는 구본무 회장 재임 기간 20여년 만에 5배의 외형적 성장을 기록했다. 1994년 말 30조 원이던 그룹 매출이 2017년 기준 약 160조 원에 달한다. 그것도 GS, LS, LIG 그룹 등을 계열분리하면서도 얻어낸 결실이다. 매년 전체성과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둘 정도로 LG는 세계 속에 우뚝 섰다. 해외 200여개 현지 법인과 70여개 해외지사의 약 8만 5천여 명을 포함한 전체 임직원만 해도 22만 명을 넘는다.

취임 이래 한순간도 쉼 없이 LG호(號)의 키를 굳게 잡고 파고를 헤쳐 온 선장 구본무 회장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은 2017년 봄이었다. 20여 년이 넘도록 그 누구보다 큰 책임감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 온 탓일까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수술과 치료로 1년 여간 투병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구본무 회장은 갑작스런 상태 악화로 입원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였다. 주변의 바람도 무색하게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오전 9시 52분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본무 회장은 평화롭게 영원히 잠들었다.

연명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히고, 눈을 감기 전에는 장례를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것을 부탁하는 등 평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과 허례허식을 꺼려하던 배려심과 검소함은 마지막 가는 길에도 한결 같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에는 조문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LG 일반 직원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지 못한 시민들은 여의도 LG트윈타워 표지석 앞에 헌화하며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구본무 회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족적과 울림은 너무나도 컸다. 옳은 일을 하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고, 좋은 일을 하고서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그냥 보고 넘기는 법이 없었으며 모든 사람을 진심을 갖고 대하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탁월한 경영자이자 사업리더였고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구본무 회장은 우리 사회의 어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화담 구본무 회장